인정중독임을 인정하고 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질타를 받으면 힘들었고, 어떠한 무리에서 인정을 받으려고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고 존재감을 뽐낼때가 행복감을 많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커가면서 대부분의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살 수 있는 사회라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을 많은 질투를하고 질타를 한다 그게 설령 앞에든 뒤에든 혹은 모르는 곳에서 익명으로 할 수 도 있는 법이다. 많은 매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러한 질타에 목매달려 알 수 없는 감정을 가지기 마련이다. 털어서 먼지나오는 사람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너는 왜그러냐고 나의 행위에 대해서 욕해도 그것을 내가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목줄을 남들에게 주는 순간 나는 그들에게 이끌려살아가는 존재로 전략하기 마련이니까.
인생이라는게 이러한 순간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항상 좋은 감정만을 가져갈 수 있지는 않다. 나에게 주어진 이러한 사소한 질타들은 죽음이라는 벽 앞에서는 아무것도아닌 우주의 먼지같은 존재이다. 이러한 순간을 맞이할때는 이제는 나의 가치관이 성장해서 여러 생각으로 대할 수 있다.
3가지의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데
1. 세도나 메서드로 이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기
: 지금 감정이 어떠한 감정인지 나를 이해하고 오롯히 돌아보는것은 참 중요하다 이때 사용되는게 세도나 메서드라고 할 수 있다. 나의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온전히 느끼고 흘려보내는 것 이를 통해서 뿌옇던 안개가 머리속에서 걷히고 나의 길이 보이는 느낌
2. 내 가치관에 대해서 생각하기
나의 가치관은 놓아버림이다. 나는 기독교이며 예수님을 믿는다. 나는 예수님이 했던 사랑을 실천하고 싶은 사람이다. 나의 가치관에 맞게 그러한 사랑의 레벨을 배우고싶고 따라가고싶다. 그러므로 내 가치관은 이세상에 증오를 낳기보단 올바른 사랑의 존재로써 활동하고싶다. 내가 어떠한 존재가 될수록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때마다 예수님의 진정한 사랑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으면 믿을수록 이 세상에 대한 놓아버림이 더 쉽게 가능하다.
나의 과거를 놓아버리고 죄책감을 놓아버리고 세상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는 순간 어떠한 일들에 대해서 별게아니며 더 집중하고 살 수 있게 되었다.
3. 나쁜것과 좋은것이라는 프레임을 갖지 않도록 해보기
2번과는 다르게 조금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자하는데 2번은 집착자체를 놓아버리고 삶 자체를 영화처럼 조금은 멀리서 돌아보는 방면이라면 3번의 방법은 직접적으로 감정을 느껴보며 이 감정이 내게 짜여진 무언가의 사회로부터 아니면 어떤 현상으로부터 나온 무의식의 산물이 아닌가를 생각해본다.
나에게 질타를 한다는건 질투라는 감정을 느끼고 나를 깎아 내리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우월감을 채우고싶어하는 마음이라고 생각이 든다. 나는 이제는 누군가가 나를 인정을 해주지않아서 슬프지않다. 대신에 그러한 질타를 느끼게 만드는게 하나님의 뜻 예수님의 사랑이 아니라서 속상하다. 이는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겠지 괜히 통제욕구가 들어서 무언가를 내가 컨트롤할수는 없는법이다. 대신에 사람들이 돌고돌아서 많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제작하고 싶다. 아무렴 그래도 어떠한 행위나 서비스 혹은 행동 말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매몰되는 감정을 느끼게 하기 보단,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다.
최근에 이렇게 나의 행동에 질타를 보내는 사람무리가 있어서 블로그에 생각정리를 해보았다.
참 우리는 사랑받을만한 존재이고 사랑을 할때 빛나는 존재들이다. 다들 이 점을 마음에 새기고 조금은 감정에 대해서 놓아버리면서 살아갈때 우리는 어떤 빛나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많은 인플루언서 혹은 유명인들은 질타를 밥먹듯 일삼아서 받는다. 그들이 질타를 대하는 방법을 배우고 또 나에게 이런 귀중한 경험이 주어졌을때, 나의 좋은 경험과 양분으로 사용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