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진똑 유튜브 채널의 “인생 최고의 철학 중용” 이라는 영상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든 생각을 주저리 주저리 내 티스토리에 써보도록 한다
영상에서 만든 중용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의 중심을 지키는 일 이라고 하였고, 감정의 중심은 초연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이 중용이라는 감정의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앎이라는게 지켜져야하며, 끊임없이 배움의 상태가 되어서 다양한 환경에서의 각기 다른 처한 상황을 알 수 있고, 나를 알고 상대방을 알고 단어의 뜻도 앎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달라지듯이 배움이 주는 무언가에 따라서 중용 할 수 있는 상황이 달라지는 거라 말하는 듯 했다.
유교에서는 인 예 등을 중요시 여기는데 사람은 관계속에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기에 당연히 관계속에서의 중용도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으며, 이 관계는 사랑을 할때 가장 편안하고 세로토닌이 많이 나오고 초연하고 중용적인 느낌이 들지 않나 싶다.
글을 적으면서 정리를 하는 마음이지만 아마도 이러는게 아닐까?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고 이것은 사랑이라고 말하는게 가장 중용적인 느낌이 드는 것이디. 하지만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배우고 자랐기때문에 그 사랑의 정의가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너무 다르기 마련이다. 사이코패스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는 사랑이 사이코패스적인 사랑이라고 여길 것이며, 다른 일반적이고 헌신적인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와는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기에 우리는 우리의 삶이 항상 진리라고 생각하지말고 끊임없이 알고 배우고 느끼며 조금 더 진리적인 사랑을 찾아나서며 중용을 느끼려고 하는것에 배움이라는게 가장 중요한게 아닐까
평소에 내 가치관에서 중요했던 점은 초연이라는 단어를 짚을 수 있겠다 평소에 나는 초연이라는 단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던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은 상태라고 정의를 하였고, 이 초연적인 상태일때 내가 현재의 상황을 가장 잘 느낄 수 있고, 내게 선물처럼 주어진 지금 이순간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짚을 수 있겠다.
그만큼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한 선물인 이 순간을 즐기고 온몸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초연적이고 중용적인 마음의 상태가 우리 온 몸을 현재라는 이 순간에 흠뻑 젖을 수 있게 만들게 되며, 나라는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관이고 인생 상일 것이다.
과거 사람에 대한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가지각색의 사람이 살아가는 방향의 한 문장의 나침반을 정의하고 싶었나보다. 이를 중용이라고 선택을 한 것이고
하 정말 인간들은 복잡한 무언가를 하나로 정의하고싶어하고 단순화하고싶어한다. 지금의 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나도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하고싶어서 정리하고자 쓴 이 글이 쓰면 쓸수록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도통 알 수 없게 된다.
즉 결론을 내자면 중용이라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에게 그들의삶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도록 도와주는 단어이며, 나침반을 제시해줬다고 생각한다.
나는 과거 사람들의 지식들을 배우고 내 인생에 접목시켜보면서 날 이해하면서 내가 심리적으로 가장 편한 상황을 만들겠다. 주저리주저리 썻지만 어떤 무언가를 한가지라도 느꼈으니 만족한다